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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파사르(Denpasar)의 파사르(pasar)는 ‘시장’이라는 뜻으로, 일찍이 이곳이 교역의 중심이었음을 지명에서부터 알 수 있다. 과거 30년간 덴파사르는 하루가 다르게 빠른 속도로 발전하였고, 수도라는 이점으로 관광객들이 당연히 방문하는 지역이기도 했다.
그러나 남부 해변의 도시들이 편의시설 등을 갖추게 되면서 관광객들은 그곳으로 몰리게 되었고, 덴파사르는 점차 소외되게 되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곳이 교통의 요충지라는 점과 박물관, 시장들을 방문하려는 사람들로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앞으로 이 지역의 무역과 상업이 발전된다면 관광객들은 더욱 몰릴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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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의 시장’이라는 의미를 가진 발리 경제의 중심지. 이름이 나타내주듯 서민들의 에너지가 넘치는 시장이 마을을 활기차게 해서 관광용이 아닌 솔직한 발리와 만나볼 수 있다. 또한 박물관 등의 문화시설도 빼놓을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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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 주의 주도인 이 지역에는 문화적 건축물과 박물관 등이 많이 있어서, 마을의 역사와 문화를 만나볼 수 있다. 또한 활기가 넘치는 시장에도 가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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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소 : 시장, 쿠쿠탄 광장, 자갓 나타 사원, 프므추탄 궁전, 시딕 자리 지두화 박물관, 발리 박물관, 타나 롯 바다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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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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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장(Pasar)
덴파사르(Denpasar)에서 파사르(pasar)는 ‘시장’이라는 뜻으로, 이름에서부터 바로 시장이라는 것을 눈치 챌 수 있다. 바둥 시장(Pasar Badung)과 꿈바사리 시장(Pasar Kumbasari)은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전통 재래시장이기도 하다.
바둥 시장의 주요 손님은 현지 주민들이다 1층에는 야채를 팔고, 2층에는 일상용품을 팔고 잇다. 어지러운 건물과 수많은 인파는 매일 아침마다 만나게 되는 풍경이다. 다소 특이한 점은 현지 부녀자들이 시장에 올 때 바구니나 수레를 끌고 온다는 것이다.
발리 여인들은 물건을 사면 모두 머리 위로 얹는 기이한 풍경을 연출한다. 물론 이런 것을 따로 배울 필요는 없고, 단지 1,000~2,000Rp. 정도면 대신 짐을 져 달라고 부탁할 수 있다. 온갖 직업 중에서 이러한 직업은 이곳에서만 볼 수 있다.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보통 전통 수공예품, 염색 천 등을 쇼핑한다. 꿈바사리 시장의 2,3층에는 헝겊, 공예품 등을 팔고 있으며, 이곳에서는 가이드 수수료 같은 주가 비용이 없기 때문에 원래 계획보다 더 사게 될지도 모른다.
2. 푸푸탄 광장(Puputan Square)
'푸푸탄(Puputan)'의 원래 의미는 ‘죽음을 각오한 싸움’이다. 이 싸움의 상대는 바로 19세기 중엽의 네덜란드인이었다. 네덜란드인은 1597년에 처음 발리 섬에 발을 내딛었으며 향료 시장의 개척과 동시에 폭력적인 수단을 사용하여 이곳을 침공했다.
발리 사람들의 뜻밖에 항거로 인해 북부에 기반을 잡았던 네덜란드인들은 1906년에야 남쪽까지 내려올 수 있었다. 당시 덴파사르는 발리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사수하던 최후의 거점이었고, 무기와 식량이 떨어지자 덴파사르의 바둥 왕국(Badung)의 지도자들은 이에 항복하지 않고 자살을 선택하였다.
푸른 풀밭에는 한 쌍의 남녀와 두 어린 아이의 조각이 있는데, 이는 과거를 잊지 말자는 의미로 세워졌다. 네덜란드인을 제외한 외국인들 중에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많이 않기 때문에 풀밭과 조각은 단지 기념사진을 찍는 곳이 되고 있다.
3. 자갓 나타 사원(Pura Jagatnata)
발리 박물관과 붙어있는 이 사원에서는 발리의 최고신인 상향 위디(Sanghyang Widi)를 모시고 있다. 현지인들에게는 매우 예사롭지 않은 장소이지만, 사원의 외관이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아 누가 얘기해 주지 않으면 눈앞에 두고도 알아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자갓 나타 사원(Pura Jagat Nata)의 주신(主神)은 흰색 산호를 깎아 만든 것으로, 그 위에는 다른 사원과 마찬가지로 아무 것도 없이 텅 비어있다. 단지 뱀에게 물린 거북이 장식이 더 있을 뿐인데, 이들은 전설 중에 하늘을 열고 땅을 만든 신이라고 한다.
이 사원은 1953년 건립된 이래 늘 참배자들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크고 작은 제사가 잇달아 거행된다. 이로 인해 때때로 오후에는 문을 닫고 의식이 거행되기도 하며, 매월 보름에는 더욱 성대한 행사가 거행된다.
각 의식은 달력의 계산방식에 따라 날짜가 달라진다. 만약 의식을 제대로 구경하고 싶다면 여행자 서비스센터에 가서 자세한 날짜를 물어보도록 하자.
(덴파사르 여행자 서비스 센터 Department of Tourism, Art and Culture Bali Regional Office - Jl. Raya Puputan Niti Mandala Denpasa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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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프므추탄 궁전(Puri Pemecut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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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 섬 남부의 건축 양식은 다량의 붉은 벽돌로 정교한 조각 장식을 돋보이게 하는 특징이 있다. 그 중에서도 덴파사르에 위치한 오랜 역사의 프므추탄 궁전은 꼭 둘러보아야 할 명소이다. 덴파사르 시 중심에서 약 200m 떨어진 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18세기 후반 바둥 왕실의 주요 궁정 중의 하나이다.
1906년, 네덜란드 군사들이 성 아래에까지 진격했을 때, 통치 권력을 상징하였던 프므추탄 궁전은 무자비하게 훼손되었고, 역사적으로 유명한 ‘푸푸탄 의식’이 벌어졌다. 현재의 위치에 세워진 건물은 후에 복원된 것이며, 지금은 호텔을 겸하고 있다. 비록 옛날식 건물의 외관을 하고 있지만, 텔레비전, 전화, 에어컨, 목욕 위생 시설까지 부족함이 없다. 2인실의 하루 숙박비는 200,000Rp.이며, 궁전에서 숙박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비용은 결코 비싼 편이 아니다.
왕실 내원(內院)에는 3개의 공간이 있다. 앞 공간의 이름은 자바 시시(Jaba Sisi)이고 중간 공간은 Jaba Tengah 라고 하는데, 귀빈을 맞이하거나 의식 등을 치르는 곳이자 호텔이 위치하고 있다. 가장 내부의 뒷공간은 Jaroan으로, 신에게 기도를 드리거나 제사를 지내는 장소이다.
궁전은 현재 아낙 아궁(Anak Agung)이 이끌어 나가고 있으며, 새로운 국왕은 Anak Agung Manik Parasaraida Cokorda, Pemecutan Xl이다. 프므추탄 궁전은 1608~1945년까지 정치적 실권을 갖고 있었으나, 지금은 발리 정부에 건의를 하는 권리만을 갖고 있다.
하지만 문화, 예술 방면에서는 여전히 일정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왕실의 왕자가 설립한 ‘시딕 자리 박물관’에서도 그 영향력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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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푸탄 의식]
1906년, 이 궁전은 네덜란드와의 전쟁에서 엄청나게 훼손당한다. 2,000여명이 목숨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발리 섬의 바둥 왕실 역시 집단 자살을 선택하였다. 이를 바로 ‘푸푸탄 의식’이라고 한다.
오늘날 푸푸탄 광장(Taman Puputan)에서는 남녀 커플이 두 명의 어린이를 데리고 있는 전쟁 기념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이는 왕실의 국왕과 그 형제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그중에 살아남은 어린이가 바로 화가 ‘I Gusti Ngurah Gede Pemecutan'의 부친이라고 하며, 그는 덴파사르 프므추탄 왕실에서 설립한 ’시딕 자리 박물관‘의 관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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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시딕 자리 지두화 박물관(Museum Lukisan Sidik Jari)
왕자 출신 화가인 Ngr. Gede Pemecutan은 아마도 자신이 전 세계 유일무이한 ‘시딕 자리 박물관(Museum Lukisan Sidik Jari)을 열게 될 것이라고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시딕(Sidik)'은 ‘점’이라는 뜻이며, ‘자리(Jari)는 ’손가락(指頭)‘을 의미한다. 이 박물관은 바로 손끝으로 그린 지두화(指頭畵) 박물관이다.
Ngr. Gede Pemecutan의 조부는 네덜란드가 침공하자 일종의 자살의식인 ‘푸푸탄 의식’을 감행하였고, 그 결과 2명의 아이들만이 살아남았다. 그중 한 명이 바둥 왕국의 국왕이며, Ngr. Gede Pemecutan의 숙부이기도 한다. 나머지 한 명은 그의 친아버지이다.
Ngr. Gede Pemecutan은 어려서부터 Grenceng Palace 궁전에서 인형극 대가 Anak Agung Putra Gede로부터 그림을 배워 기초를 튼튼히 쌓았다. 1954년에 우붓 Pitamamha 미술 협회의 영향으로 그림 창작 활동을 시작하였고, 그런 다음 Wayan Kaye와 Dr. Moerdoyo 등의 유명 화가 아래에서 자기의 스타일을 찾아내어 인상파 화가가 되었다.
1967년에 그는 그림을 그리던 붓이 부러지면서 우연히 자신의 손가락을 붓 삼아 그리다가 의도하지 않게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는 지두화 기법을 발견하게 되었다. 손가락으로 그린 그림은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스타일이었고, 독특한 풍격을 드러내었다. 당시 이 의도하지 않게 생겨난 작품의 제목은 ‘발리 전사(Tari Baris)'이며, 현재 박물관 내에 보관되어 있다.
집게손가락을 이용하여 그린 그림은 일반 그림 작품과 상당히 다른 느낌을 갖고 있는데, 볼수록 맛이 살아나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있다.
현재 박물관에서는 그의 첫 작품부터 최근 작품까지 모든 흐름을 전부 볼 수가 있으며, 이러한 작품들을 감상할 때에는 일정한 거리를 갖고 보는 것이 좋다. 또 직관적으로 그림의 색상 변화와 손가락 터치 등을 감상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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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발리 박물관(Museum Bal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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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박물관은 주로 발리 공예품을 수출 및 거래하였던 정부기관 건물이었는데 지진으로 전체 건물이 붕괴되면서 문을 닫았다. 그러나가 30년대 초반에 아티스트 Walter Spies가 이곳을 다시 재건축하였다.
왕궁의 아름다움을 참고하여 지은이 건물은 각 건물과 정자 등이 모두 서로 다른 궁전을 모방하여 만든 것이며, 서로 다른 스타일이지만 잘 어울린다. 화려한 소장품 역시 부분별로 나뉘어 각자의 위치에 전시되어 있다.
입구 가까운 곳에 위치한 주 건물에는 역사 이전의 문물 및 발리 섬의 전통 공예품, 천만 년 전의 청동기 도구, 발리의 바구니 등을 전시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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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nbanan 궁전을 모방하여 만든 북쪽 건물에는 각종 무용가면 및 장신구 등을 진열하였으며, Karangasem 궁전을 모방한 중간 건물에는 종교 제사와 관련 있는 기물을 전시하였다. Buleleng 궁전을 모방한 남쪽 건물에는 발리 섬의 유명한 직물 제품 등이 놓여 있다.
비록 서면 자료는 부족하지만, 부가 설명은 빠진 것 없이 잘 설명되어 있다. 앞뜰에 위치한 고루(鼓樓)는 위로 올라갈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다. 전망은 훌륭하지만, 올라가는 계단에 손잡이가 없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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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나 롯 바다사원(Tanah Lo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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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나 롯 바다사원을 얘기하자면 사람들은 자연스레 고승 Nirartha를 떠올린다. 그가 이곳을 지나가면서 이곳이 기가 모이는 곳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현지 주민들에게 이곳에 사원을 짓도록 건의했던 것이다.
민간 전설에 따르면 바다사원 아래에 있는 침식 동굴에 흑백이 분명한 우산 모양의 바다뱀이 몇 마리 나타났다고 한다. 현지인들은 이를 사원과 백성들을 보호하는 바다 신의 화신이라고 여겼고 이때부터 바다사원은 매일 참배객이 끊이지 않게 되었다.
비록 바다사원의 의미가 범상치 않지만, 일반 관광객들은 이곳에 와서 사원보다는 황혼 석양의 아름다운 풍경을 우선적으로 감상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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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맑은 날에는 아름다운 석양을 감상하고자 하는 수많은 관광객들로 바다사원은 붐빈다. 장삿속이 밝은 상인들은 석양 감상에 가장 좋은 장소에 일찌감치 자리 잡고 야외 매점들을 펼쳐 놓고,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음료 등을 마시면서 해가 지기를 기다린다.
관광객들이 상당히 많기 때문에 좋은 자리에서 석양을 감상하려면 일찍 서둘러 와서 자리를 미리 잡아두는 것이 좋다.
바다사원은 발리에서 석양을 감상하는데 최고의 장소이다. 눈앞에는 인도양이 끝없이 펼쳐져 있고, 뒤에는 바다사원이 홀로 서 있다. 매일 저녁놀 사이로 빛나는 태양이 파도 위를 비추면 반짝이는 모습이 정말 장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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